생산일지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 위험한 커피 권태기

원더월커피로스터스 2021. 8. 10. 19:48

나의 커피 인생에 있어 첫번째 위기였던 2018년.

정말 위험한 한 해였다.

너무 열심히 했던게 문제였을까?

커피가 너무 재미 없었고 또 일하는게 너무 싫었다.

그 바탕이 되는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심플하게 돈이었지만

내가 돈만 밝히는 속물이 되기 싫은것인지 그냥 커피가 지겨워졌다고 생각하고 외면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열심히 하는데 돈은 안되니 욕망이 채워지지 않고 계속 깨진 독에 물붓기일 뿐인 상황이었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위기는 기회라고 누가 말했는가. 위기는 그냥 위기다.

사람의 성향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나는 같은 일을 두번하는 것과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걸 정말 싫어한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떠버린 상황에서 계속 이 일을 하는게 굉장히 지겨웠지만

뭐 어쩌겠는가 밥벌어먹고 살라면 싫어도 해야지.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무턱대고 일을 벌려나갔다.

내 속에 있는 문제는 저 멀리 꼭꼭 숨기고 정신없이 일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아무런 재미도, 기쁨도 없이 원래 하던거니까 당연하게 2주년을 준비하고 대충 좋은 커피를 모아서 판매를 했다.

마치 인쇄소에서 틀을 하나 만들어 놓으면 계속 똑같은 인쇄물을 만들듯이

나라는 사람의 감정을 넣지 않고 그냥 똑같은 결과물만 찍어냈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네이버 커피 관련 카페에서 꽤 큰 홈바리스타 클럽에서 원두 판매를 하기도 했고

디자인 유얼 커피라는 새로운 커피 시스템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직접 자신의 커피를 디자인하여 블렌딩을 만들 수 있게도 했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열심히는 했지만 일과 커피가 너무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것이라 꾹 참고 했다.

겪어본 사람들은 잘 알테지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일을 하는건 정말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다.

차라리 회사를 다니는 상황인데 이렇게 계속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일을 그만두고 휴식하겠지만

자영업이라는 굴레에 갖혀있다보니 스트레스가 심해지더라도 문을 닫을 수 없는 현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매장에서 커피만 판매했지만 음료라도 팔면 재미가 있지 않을까해서

분주하게 준비해 음료를 판매도 해봤지만 잠깐의 흥미가 생길뿐 역시나 효과가 없었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커피 교육을 해볼까? 라며 부지런히 준비하고 업로드했지만

그 바쁜 기간을 넘어가면 또 흥미를 잃고 괜히 더 벌려놓은 일에 따른 업무량의 증가에 한숨만 푹푹 쉬었다.

내 즐거운 감정을 찾기위해, 커피를 잃지 않기위해 최대한 많은걸, 다양한 걸 접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커피 권태기는 2018년의 절반을 넘어갔고 그 증상은 어떻게 해도 나아지질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내 커피 권태기는 사라졌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뜬금없이?

그렇다 내가 커피 권태기를 극복한 것은 다름아닌 정은지였다.

에이핑크의 멤버로 꽤나 오랬동안 덕질을 한, 그리고 지금도 ing 하고 있는 사람이다.

참 매력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가졌기에 참 관심있어 했지만 이전에는 앨범만 사고 약간의 흥미만 있을뿐이었다.

커피 권태기에 빠져 수습하느라 일처리에 애를 먹고 매일 밤을 새며 무리를 하던 내게

어느날 갑자기 들려온 솔로 콘서트 소식은 나를 다시 흥분하게 했고 아무 생각없이 일단 티켓팅을 했다.

티켓팅을 한 순간부터 한명의 소녀팬처럼 마음이 콩닥거리기 시작했고

감정없는 로보트마냥 일하던 내게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https://youtu.be/Xpqc5kAqIXA

몇일을 두근대고, 공연을 보는내내 너무 행복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에 걸어오는 길 조차도 흥분이 가실질 않아 집까지 한 시간정도를 그대로 걸어온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 날을 기점으로 내 커피 권태기가 사라져 버린걸 100% 이해하진 못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생각해본다면

매장을 운영하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굉장히 많았다.

직원을 쓸 여유는 없던터라 항상 혼자였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힘든 내색없이 언제나 괜찮다고만 했다.

몇 없는 친구들이지만 걱정을 끼치고싶진 않았기에 그저 혼자 묵묵히 참고 또 참았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게 무엇인지, 내가 하고싶은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시간이 흐르니까 그 시간을 따라잡기위해 항상 애쓰고 홀로 외롭고 쓸쓸하게 버텼기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누군가가 따뜻하게 불러주는 위로의 노래를 듣고

그간 고생한 내 자신을 토닥이며 애썼다 라고 스스로 따뜻하게 안아줬다.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

 

 

콘서트를 다녀온 후로는 감정적인 부분이 채워지고 안정이되니 일이 즐거웠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의 전환이 많이 되었고 함께 라는것이 좋다는 걸 많이 느꼈다.

이때부터는 부모님께 조금씩 나의 힘듬을 이야기는 하지만 원래 무뚝뚝하다보니 지금도 어렵긴하다.

친구들도 나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를 해주기도하고

내가 힘들고 어렵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더라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다는걸 알게 된게 무엇보다 가장 큰 내 삶의 변화기도 했다.

사람들이 내 생각과 달리 나를 좋아하고 생각해주고 있구나.

조금은 의지해도 되는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원더월 생산일지 15화

 

 

그렇게 나의 작고 소중한 원더월 커피에 한 줄의 글이 추가되었다.

원더월 커피를 가장 잘 표현하고, 그리고 이루고 싶은.

"커피를 즐겁게, 그리고 함께."

나는 커피라는 것이 커피인들이 모여 자기들만의 축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모르는 사람들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그리고 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가 함께 커피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아직도 그렇게 되려면 갈 길은 멀지만 이제는 어두웠던 길에 조금은 빛이 보인다.

그 빛을 위해 나는 지금도 열심히 걷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누군가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혼자 모든걸 안고 가지 않길 바란다.

나는 그 길을 가봤기에 끝은 너무나 차가운 쓸쓸함이다.

누군가와 꼭 함께 걸으시길,

그리고 그 손의 따뜻함을 꼭 누군가에게 나눠주길.

https://youtu.be/kumMqZaEZ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