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에 나를 투자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철부지 시절부터 인생에 대해 조금은 떠들수있는 30대까지
나의 모든 순간에 커피는 함께였다.
커피와 오랜시간 함께하니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어 이거 맞나?"
"내가 잘하고 있는게 맞나?"
머리속에 계속 드는 뿌옇고 탁한 의문과는 다르게
그동안의 노력에 보답하듯 결과물들은 아주 선명하게 좋은 색을 냈다.
쌀밥, 초밥 블렌딩으로 인해 원두납품 영업에 굉장한 성과를 이뤄냈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는 광고를 쓰지 않아도 네이버 쇼핑에 자연스럽게 상위권 노출이 가능해졌다.
꾸준한 재구매와 안정적인 납품처, 그리고 관리를 담당하는 똑똑한 직원까지.
매우 안정적이었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탁한 생각이 머리에 남아 계속 신경쓰였지만
정확한 원인도, 해결법도 모르기에 그냥 그대로 살고 있었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나를 챙겨줄 시간도 사치일만큼 일이 바빴지만 일과 하나가 된것마냥 엄청난 일처리 능력을 보이며
말 그대로 날아다녔다.
그러던중 추석 연휴를 얼마 남기지 않고 낯선 번호로 전화가 한통 왔다.
"안녕하세요, 마스터오브카페입니다.
이번 대회에 출품해주신 커피가 싱글 원두 분야 탑3에 올라서 본선 진출을 하셨는데 참가하시겠어요? "
"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마스터 오브 카페는 로스터리 카페들이 여러 분야 (우유베이스, 블렌딩, 싱글, 콜드브루) 에 자신이 로스팅한 원두를 출품하여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상위 점수에 랭크된 탑 3의 커피들을
커피&베이커리 페어에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블라인드로 시음을 하여 가장 높은 투표를 받은 커피에게 1등의 영광을 주는 대회이다.
커피 전문가들이 먼저 탑3를 선택하여 커피에 전문성을 더하고
일반 소비자들이 탑1을 선택하여 커피에 대중성까지 더하게 된다.
즉 전문적이고 대중성을 가지는 대회이다.
(현재의 마스터오브카페와 룰이 동일한지는 확인해보지 않았고 2019년 대회 기준이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원더월 커피는 싱글 오리진(싱글 원두) 부분에만 커피를 출품했는데 놀랍게도 탑3에 오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기억을 거슬러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걸 보면
그때의 나는 마음은 굉장히 흥분했을테지만 눈앞에 놓여있는 까마득하게 쌓여있는 준비과정을 생각하니
이내 곧 흥분은 가라앉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스터오브카페, 커피&베이커리 페어를 위한 준비를 해볼까?
두둥탁!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마스터 오브 카페 대회는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카페&베이커리 페어 한쪽에서 진행되는 행사였다.
커피인의 축제로 불리는 카페쇼에 비하면 행사 크기가 작은편이지만
이렇게 외부 행사에 나온 것이 처음인지라 굉장히 긴장되기도했고 엄청나게 힘이 빡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김정년병이 발병했다.
보통 뭔가를 꼼꼼하게 준비할때 A-Z까지 준비한다라고 많이 하는데
김정년병은 무슨 준비 강박증 환자처럼 변태같이 A-Z + a-z + 0-9 까지 모든걸 준비하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은 치유됐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모든 준비에 있어서 가장 먼저 핵심적인 주제,
원더월 커피를 관통하는 한마디를 정했다.
그것은 "대중성"
대중성이란 단어는 내가 커피를 대하는 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는 커피를 단순하게 "음료"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중에, 잠시 쉴때,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때 조용히 생각을 할때 등등
사람이 주체가 되고 그 옆을 조용히 채워주는 역활이 커피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커피는 특정 집단이 좋아하는 맛보다는
모든 사람이 좋아할만한 맛을 가져야한다는게 커피에 대한 나의 신념이다.
그 신념을 이루기위해 나의 로스팅 기술을 넣어서 대중성과 전문성을 합친
"궁극의 대중성"을 가진 커피를 완성하는 것을 내 인생의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그렇기에 우리는 대회에 참가하여 원더월의 대중적인 맛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에게 원더월 커피라는 곳을 홍보하는 목적을 가지고 준비를 했다.
준비한 커피는 우리의 목적에 맞게 디자인된 고소한 쌀밥, 상큼한 초밥 블렌딩 그리고 "탑쓰리수라"
하나씩 도장찍느라 죽을뻔했다...
수라는 임금님이 드시던 밥 이라는 이름을 가진 만큼 스페셜한 커피를 준비했다.
바로 탑3에 오르게 해준 커피, 코스타리카 코르디예라 데 푸에고 무산소 발효 가공을 준비했다.
두가지 대중성을 가진 블렌딩과 한가지 전문성을 가진 싱글 원두,
이렇게 3가지 밥을 준비했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밥시리즈인만큼 부스전체를 밥집처럼 만들고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보니 비슷한 느낌만 주었다.
아쉽긴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이때는 왜이렇게 카톡에 집착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쯤에 제작한 거의 대부분이 카톡같이 만들어놨다.
왜그랬니 정년아?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여러가지 홍보물도 제작했다.
특히 준비기간에 컴퓨터를 많이했는데 이때부터 피곤하면 눈이 엄청 건조해지는 현상이 생기게되었다.
축 질병 획득!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커피대회때 사용한 메인 사진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저런 사진을 썼는지 나 자신이 잘 이해는 안가지만
지금 봐도 꽤 괜찮은걸이라고 생각하는걸 보면 아직 정신 못차린거 같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예쁜 반팔티도 맞췄다.
지금은 시간이지나 목도 늘어나고 검정잉크가 연한 회색이 되버렸지만 참 잘 입었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짠 이런느낌이다.
워낙 정신없던터라 사진찍을틈이 없어서 남는게 몇장 없다.
밥집같은 느낌을 주려고 수저랑 밥그릇도 DP를 했는데 잘 보이지 않아 아쉽다.
원래는 식당에 있는 큰 밥솥을 가져오려고 했는데 섭외에 실패했다.
원두도 일반 포장지가 아니라 식당에서 쓰는 밥그릇으로 준비했는데 납품기한이 너무 아슬아슬해서 포기했다.
그외에도 엄청 많은걸 준비하고 취소하고 수정했다.
준비하는 기간이 너무 짧고 만들게 많다보니 하루에 1시간 정도 자면서 2주정도를 버텼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준비를 많이했고 정말 최선을 다했다.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2년이 지난 지금 글 작성을 위해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다시봐도
이때의 두근거림이 사진에서 내게 전해진다.
모든게 처음이었기에 정말 재밌었고 정말 설레였다.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나를 갈아서, 하얗게 불태운적은 없었다.
이때의 나는 정말 미쳐있었고 , 집중했고, 독이 바짝 올라있었다.
그만큼 노력했고
그만큼 기대했다
그렇기에 내 손에 올려진 결과는 매우 슬펐지만 내 인생을 바꾸었다.
https://youtu.be/xgvckGs6x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