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언제 가장 기쁠까?
첫 여자친구가 생겼을때?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때?
취직에 성공했을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때?
나는..
지난 생산일지에서 적었듯 대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하려한게 문제였다.
다른 커피인들과 교류가 없는 나이기에 이런 커피 행사는 처음이라 서툰게 너무 많았다.
준비는 굉장히 많이 했지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건 사람이었다.
사람이 굉장히 많이 오는 행사라보니 능숙하게 응대할 수 있는 인원이 많이 필요했지만 우리는 겨우 2명이었다.
다른 회사들은 5-6명, 많게는 십여명이 우루루 와서 교대도 하고 홍보도 하러다녔지만
우린 2명뿐이라보니 부족함이 보였다.
게다가 나는 행사 오픈시간인 10시 부터 마감시간인 17시 까지 커피만 계속 내려야하고
직원은 개인구매자들과 납품문의를 하러온 업체들까지 모두 커버를 해야했다.
직원은 목이 쉬어가고 나는 손목과 목이 점점 움직이질 않았지만
우린 4일을 꾹 참아내고 서로 힘든 내색없이 화이팅을 외쳤다.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기 위해서.
처음이기에 우리는 더 열정적으로 외쳤다.
쌀밥 한끼하세요!
초밥 먹고가세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원더월 커피 입니다!
4일이라는 시간동안 천국과 지옥을 몇번을 왔다갔다했다.
나는 눈떠있는동안은 계속 코피가 나고 직원은 몸이 너무 안좋아져서 말도 제대로 못할정도였다.
우리는 4일동안 제대로 잠도 못잤지만 조금이라도 더 밝게, 더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버텨냈다.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그렇게 4일이 지나고 마지막날.
우리는 웃으며 끝까지 노력했고 드디어 시상식 차례가 왔다.
나는 굉장히 무대울렁증이 심한 사람이라 순위 발표를 위해 나가서 서있는데 긴장되서 미치는줄 알았다.
나가기전부터 헛구역질을 너무 많이해서 위가 통째로 나오는줄 알았다.
그렇게 나온 위를 부여잡고
3위부터 순위를 발표하는데
"3위 원더월 커피 로스터스"
사실 이때 내가 어떤 표정을, 어떤 말을, 어떤 행동을 한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으려고해도
마치 만취한 상태에 필름이 끊기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직원 말로는 엄청나게 좋아함과 서운함이 공존하는 신기한 얼굴이였다는데 나는 지금도 하얗게 기억날뿐이다.
그렇게 4일간의 대회기간이 끝나고 직원과 돌아오는 차안.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굉장히 복잡한 감정들이 쏟아져나왔다.
끝났다는 기쁨, 3등이라는 창피함
서러움, 쾌감, 성취감,
정말 많은 감정이 몰려오고 눈가가 촉촉해지고 감정의 바다에 퐁당빠지려는순간
직원이 갑자기 노래를 따라부르며 "울지마 바보야" 를 외치길래
정년표 맛갈나는 욕설이 장전될뻔했지만 오랜만에 아주 크게 웃었다.
정말 시원하게 웃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커피를 했다. 처음엔 정말 좋아서 했다.
하지만 어느날부턴가 길을 잃지 않기위해, 포기하지 않으려고, 커피가 없으면 나는 없어진다는 불안감때문에 열심히 했다.
그랬다.
내 머리속에 있던 뿌옇고 탁한 색은 불안감이었다.
내가 이렇게 한 분야에 오래했는데 잘 하고 있는걸까?
내 선택이, 내 커피가, 내 기술이 맞는건가?
그 불안감은 스스로 지우지 못한다는걸 그리고 평생 내 머리속에 있을걸 알기에 나는 더 노력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노력이 아니라 회피였다.
혹시라도 불안감과 눈을 직접 마주치면
"너 틀렸어" 라고 할까봐 나는 항상 앞만보며 달려갔고
스스로 더 열심히하라고 채찍질만했다.
나를 너무나 혹사했고 스스로를 사랑해주지 않으며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몸과 정신을 한계까지 몰아부쳤고 내가, 나의 커피가, 모든게 부서져갔다.
그런 상태에서 준비하고 끝낸 커피대회였다.
그렇다면 나는 3등이라는 성적에 산산히 부서졌을까?
결과를 받고 처음 느낀 감정은 단순한 분함.
내가 커피로 졌다는 것에서 오는 감정으로 훗날 나를 더 커피 세계에 빠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인정받았다" 는 것에 엄청난 기쁨을 느꼈다.
드디어.
https://www.youtube.com/watch?v=gR4_uoJdOr0
너무 외로운 싸움이었다.
직원이 있더라도 느껴지는 외로움, 커피와의 싸움, 미래의 불안감, 자신의 실수와 결정에 대한 후회, 등
혼자서 짊어져야 할 너무나 많은 짐과 무엇보다 커피에 대한 확신을 계속 갈망하는것.
마치 사막에서 물을 마시면서도 오아시스를 계속 찾아 해매듯
모두가 맛있다고 하더라도 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내 커피를 맛있다 라고 느낄 수 없는 괴리감.
그렇기에 대회에서 3등이라는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인정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내 커피가 인정받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틀리지 않았으며
옳은 길을 가고 있었고 앞으로 더 열심히 가면 되는 것이다.
그동안 수없이 흘렀던 감정의 세월들과 혼자만의 싸움, 외로움이 모두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단순하게 글로 담기엔 내 글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이지만
"인정받는다" 라는 이 글자가 주는 긍정적효과로 인해
내 인생이, 그리고 나의 가치관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지금도 나라는 괜찮은 사람을 만들어준것에, 그리고 내옆에 커피를 있게 해준 고마움을
나는 평생 기억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정말 많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내가 직접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의 힘듬이 조금만 덜어질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의 수고로움을, 그동안의 길고도 외로운 그 노력을 인정하고 힘찬 박수를 쳐줄것이다.
그동안 고생많았어.
더 열심히 할 수 있어.
'생산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더월 생산일지 23화 : 삼도천 (0) | 2021.09.23 |
---|---|
원더월 생산일지 22화 : 마! 붓산가봤나! (0) | 2021.09.13 |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 출발 (0) | 2021.09.05 |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 출발 (0) | 2021.08.27 |
원더월 생산일지 19화 : 냐옹 (0) | 2021.08.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