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신기한 일들이라고 해야하나,

무심결에 했던 행동들이 하나 둘 모여서 엄청난 일이 되버리는.

21년 가을에 시작되었다.

생산일지 29화

 

하나.

나는 애연가였고 스트레스에 매우 약했다.

지금이야 알게되었지만 스트레스에 굉장히 약하고 예민한 성격이었는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쿨가이라고 생각했던게 큰 문제가 되었다.

알게모르게 쌓이는 스트레스를 술과 음식 담배로 해결을 하려고했던 것이다.

둘.

1년 정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불편했지만 흡연때문이라고 생각한 나는 그냥 단순히 금연을 하고는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셋.

근무환경이 불을 쓰는 곳이고 매연과 미세먼지가 굉장히 많은 곳인데 이런 환경에서 장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10여년을 그대로 노출되었던 것.

넷.

몸상태가 나빠지는데도 운동을 하지 않고 계속 야식을 먹으며 100kg 가깝게 살을 찌운것.

이렇게 4가지가 기본적으로 깔린 상태라보니 몸상태가 작년 가을부터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생산일지 29화
 
 
게다가 매장 근처라는 이유와 짐을 둬야 된다는 생각에 싸게 매물로 나온 반지하를 얻어서 8개월 정도를 살았던게 가장 큰 문제거리였다.

몸 안쪽도 문제가 쌓였는데 몸 밖 환경을 매우 안좋게 하고 지내다보니

10월 어느날, 잠을 자려다가 갑작스럽게 발작이 왔다.

놀랍게도 숨이 갑자기 안쉬어지는것이었다.

코로 공기를 쭉 마시면 폐에 들어온 공기가 순환되서 다시 입으로 나오는게 기본적인 호흡인데 이게 전혀 되지 않았다.

숨을 쉬어도 숨을 쉬는 느낌이 전혀 없다보니 계속 숨이 차오르지만 크게 숨을 쉬어봐도 전혀 해소되지 않고 계속 갑갑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10번 숨을 마시면 1번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랄까.

그전부터 답답함과 불편함이 있었는데 이내 괜찮아질거라는 생각과 혹시나 큰 병은 아닐까 불안함에 애써 병원은 피했던 내 자신이 너무 못났지만 당장 숨을 못쉬니 머리가 하얘지고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응급실에 가려고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을 주섬주섬 입다보니 조금은 호흡이 편해졌고 이게 뭔가 싶은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다음날이되었다.

조금은 몸이 괜찮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호흡과 널뛰는 심장박동에 동네 내과를 바로 찾아갔다.

생산일지 29화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의뢰하고 증상을 설명드리니 "천식" 같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천식이란게 태어나면서 부터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나이를 먹고 몇몇 알러지 요인이 생기면서도 생긴다고 한다.

다만 천식입니다! 라기보단 천식일것같습니다~ 라며 천식 흡입제를 처방받았다.

흡입제라는게 그 영화나 드라마에서 환자들이 발작을 일으킬때 흡입하는 기구가 맞다.

무튼 처방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마 이 날 부터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겼던것 같다.

건강에 대한 걱정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인터넷에서 증상을 적어가면서 어떤 병이지, 어디가 아픈거지 찾아보고

불안해하고 불면증과 신경예민, 두통등이 생겼다.

거기다가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통해서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3콤보가 위험바로 직전 단계란 것을 알고는 급격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하루에 밥 반공기정도를 먹으면서 미친듯이 공원을 뛰어다니고 운동을 했는데

지금은 잘 알고 있지만 겨울의 추운 날씨 + 유산소운동 이렇게 둘이 합쳐지면 천식환자한테 매우 치명적이라는걸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다.

거기다가 자는 공간은 반지하의 습하고 먼지가 많은 환경.. 천식환자에게 치명타를 몇번 때려박았는지..

거기다가 이때 약 한달만에 15kg 정도를 감량했는데 너무 안먹고 급격하게 살을 빼다보니

영양부족과 저혈당 증상으로 인해 부작용이 굉장히 심했다.

몸이 덜덜 떨리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팔다리가 저리고 경련이 있었다. 몸이 떨리는게 얼마나 무서운 경험인지 이때 깨달았다.

악순환이었다.

건강이 계속 나빠질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좋아지려고 노력하니 전혀 좋아지지 않아 계속 건강 걱정을 하게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계속 쌓여 신체에 영향을 주는 악순환. 지옥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말이 안나오게 천식 처방때 받은 흡입제가 나한테는 약간 거부반응이 있어서 심장박동을 굉장히 빨리 뛰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때 내 평소 심박수가 100~110 이었으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생산일지 29화

그렇게 천식판정을 받고 한달정도를 병원에 살다싶이 했다.

계속 병원을 다니고 진료받고, 검사하고,

정확하게 어디가 아픈지를 모르니까 여기 조금 아프면 어? 이거 그 병이랑 증상이 비슷한데? 하고 병원가서 검사받고

돈과 시간을 정말 많이 쓰는데도 정확한 병명은 안나오고 괜찮다고만 하니 머리가 더 지끈지끈 했다.

계속적인 불안감에 사로잡혀있고 그때문에 심장은 더 빨리뛰고 더 불안해졌다.

그렇게 한달 정도를 병원을 계속 다니면서 심장, 뇌, 혈관, 눈, 귀 싹 검사를 하고는 최종적으로 이상 없음 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생산일지 29화

이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살다가 처음 겪어보는 죽을뻔한 발작증세와 건강하다고 믿었단 내 신체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몸안에 잠재된 위험요소까지.

일을 하다가도 수십번 병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집에서는 불안함에 잠을 잘 수 가 없었다.

또 발작하면 어떻게하지? 이대로 자다가 죽는거 아닌가?

정신적으로 무너졌다.

그래도 결과적으로는 몸안에 있는 문제들을 잘 알게되었고 앞으로 평생이지만 관리해야하는 것들을 알게된 좋은? 계기는 맞았다.

생산일지 29화
 
 

 

병원에서 한 모든 검사에 정상을 확인하고는 바로 집을 이사했다.

무조건 층고가 높고 햇빛이 좋은 곳을 찾았는데 마침 딱 나와서 일단 계약을 먼저 했다.

지금도 매우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이 너무 부시지만..

생산일지 29화

(처음으로 고혈압 경계인 130-80 이하로 떨어진 날)

150에 90에 치솟던 혈압도 지금은 110에 70정도로 더 낮아졌다.

생산일지 29화

 

100kg 였던 몸무게는 다시 건강한 식단과 적절한 운동을 통해 78kg까지 감량을 성공했다.

현재도 잘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감량을 하며 고지혈증과 당뇨의 위험은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정신적인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생산일지 29화

 

그렇게 지금의 상태로 오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천식때문에 흡입제를 하고 있고 마리속에 있던 정신적 불안감이 100% 사라진것은 아니다.

정신력이 약해지면 스멀스멀 숨어있던 놈들은 다시금 찾아오지만 전처럼 매달리거나 잡아먹히지 않고 단단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

생산일지 29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한참 아프던 작년 11월~12월에는 원더월을 접을 생각을 했다.

이때 당시에는 우연히 발견된 문제의 검사 결과가 정확히 나오지 않았던 때라서 수술이 필요하다고 얘기가 나오던터라

정신적으로 더이상 버틸수가 없어서 포기를 하려고 했다.

이를 직원에게도 이야기 했었는데 그 당시 자신이 로스팅을 배우고 어떻게든 한달은 버텨보겠다며 수술을 받고 오라던 직원의 말에

그래 내가 포기하면 안되지 라며 마음을 부여잡았던게 기억이 난다.

어찌보면 그때 내가 원더월을 놓았더라면 생산일지는 이번화가 마지막일 수도 있었겠다.

생산일지 29화

 

나는 나를 돌보기보단 일! 일! 일! 을 하며 달려온 사람이었다.

24시간, 일주일, 한달, 1년내내 회사가 더 커지고,커피가 더 맛있어지고,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에 더 노력하고 포커스를 맞춰왔다.

하지만 지금은 절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루에 정해진 시간만큼만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해서 일을하고 나머지 "내 시간" 에는 철저히 회사를 생각하지 않고 나를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일과 삶의 벨런스, 사람들은 어디 돈벌라면 일을 더해야지! 라고 하지만 해보니까 절때 아니다.

우연히 이 글을 읽는 또 다른 커피쟁이들, 자영업 후배가 있다면 무조건 일과 삶은 분리하고 살기를 바란다.

건강, 잃으면 돌이킬 수 없고 돌이키려해도 절반도 다시 못가져 오더라, 많이 가지고 있을때 더 잘 챙겼으면 좋겠다.

항상 건강히. 커피하자.

https://youtu.be/OxgiiyLp5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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