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월의 5주년이 지난 어느날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펴고 5년전으로 돌아가봤다.
29살.
젊음을 희생하며 헌신한 곳에서 참담한 미래를 보고
번뜩 꿈에서 깨어보니 처참한 상태의 현재가 있었다.
열정! 을 외쳤지만 페이! 는 없었고 당연히 모은 돈도 없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어딘가 소속되기도 겁이 났다.
그래서 원더월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겁쟁이가 되어 나만의 세계로 도망친 것이다.
가진 것도 준비한 것도 없었지만, 그냥 시작했고
그때는 젊음과 내 커피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기에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창업에 필요한 돈은 한 참모 자랐고
친구에게 빌려 겨우 보증금을 내고 페인트를 사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아는 형님네 가게에 들어갈 로스터기를 임시로 빌려서 장사를 시작했다.
월세 낼 돈이, 그라인더가, 천장을 칠할 페인트 값이 없어서
온종일 고깃집에서 일을 하고 새벽에 돌아와 부족함을 채워갔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내 이름의 가게를 연 것에 기뻐하는 척, 성공한 척했지만 현실은 시궁창보다 못했기에
이를 벗어나려 독기를 품고 1분 1초를 아껴가며 일을 했고 정말 악으로 버텨냈다.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추억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만큼.
나는 이제 커피를 시작한 지 11년이 되었고
원더월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다.
겨우 이 정도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진 않지만, 옛날의 나는 너무 힘들었기에
커피를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내가 느꼈던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만의 커피를 하고 싶다면 그냥 시작 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채워가면 되고 그 과정이 힘들어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돈 없이는 하지 말자.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 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의외로
자신의 커피 기술에 자만해서, 자신의 커피 신념이 확고해서, 자신의 커피 애정이 넘쳐나서,
등의 이유로 가장 중요한 현실을 보지 않고 시작하게 된다.
그때의 나처럼.
돈이 없다면
커피를 내리는, 볶는, 마시는 모든 순간의 행복이 단순히 돈을 위한 일이 되어 버리고
나의 삶이었던 커피가 일이 된 순간부터 내가 있는 공간마저 스트레스가 되어버린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가,
나의 20대였던 커피가
어느 순간 돈 때문에 싫어지고 미워지기에
커피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용기를 나는 항상 응원하고 도와주겠지만
나처럼 생각 없이 시작하기보단 꼭 여유 있게 돈을 모으고 시작했으면 한다.
열정이 밥 먹여 주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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