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을 나누는 경계선 삼도천
갑자기?
새식구가 들어왔다.
이름은 기센 W6, 기존에 사용하던 W1 제품의 한단계 상위 버젼이다.
W 뒤에 붙어 있는 숫자가 1회차에 로스팅을 할 수 있는 양이라고 보면 된다.
W1은 한번에 1kg 씩 W6는 한번에 6kg 씩, 대략적으로 5-6배 정도 생산량에 차이가 있는 기계이다.
기계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대략 4년이 걸렸다.
처음 원더월을 시작할때 돈이 없다보니 대출로 시작한터라 생각보다 오래걸렸지만 결국은 해냈다.
10월 중순 커피대회가 끝나고 매년 11월에 열리는 카페쇼에 가서 바로 계약을 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과감한 결정은 필요한 시기였기에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했다.
불안했지만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바로 결정을 하게된 이유가 하나 있었다.
대회가 끝나고 굉장히 많은 수의 카페에서 납품 요청과 미팅이 들어왔다.
직원은 하루에 5-6건은 기본으로 매일 미팅을 다녔고
나 역시 작은 로스터기로 물량을 맞추느라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렸다.
대략 한 달 정도를 이렇게 보내다가 한가지 사건이 터졌다.
꽤 큰 규모의 카페에서 커피대회에서 우리 모습을 좋게 보고 납품을 요청했다.
우리 외에도 여러 회사들이 있었지만 꽤나 우리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납품 이야기가 거의 나오고 있었고 세세한 가격조정 정도만 남아있었다.
우린 꽤나 흥분했고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없을만큼 지점을 여러개 둔 큰 카페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가격 협상과 사용하는 물량을 도저히 감당할수 없기에 납품에 실패했다.
작은 로스터기로 해당 카페의 발주를 소화하려면
납품 물량을 생산하기위해 최소 20시간은 로스팅만 해야 물량을 맞출 수 있는 양이었다.
물론 그쯤에는 그정도 로스팅을 일주일에 1-2번은 했기에 괜찮다고, 나는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생산되는 시간, 노동력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가격을 낮춰 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많은 양을 사용하기에 정가보다는 더 낮은 납품가를 희망하는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기에 다른 업체에 가격과 안정적인 생산력 두가지 측면에서 철저하게 패배를 했다.
이 일이 있고나서 직원도 나도 꽤나 큰 허탈감을 느꼈고
다음해 여름쯤에 구매하기로 계획했던 W6 로스터기를 바로 구매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그렇게해서 오게된 W6
계약과 구매는 11월에 했지만 실제로 나에게 온건 2월 초였다.
제목에서 썼던 삼도천이 바로 19년 11월 부터 20년 4월까지인 이 구간에서 왔다갔다했다.
커피대회이후 늘어난 거래처의 수, 그리고 납품 물량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의 안정화로 증가된 개인 소비자 물량
W6 로스터기의 로스팅 프로파일을 잡기위해 수없이 많은 로스팅을 하며 테스트를 해야하는 과제
4주년 행사를 위해 준비해야하는 많은 것들,
이 시기는 내가 원더월을 운영하면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출근이 새벽 4시 고정이었고 퇴근은 밤 11시, 12시가 기본이었다.
하루에 18~20시간은 기본으로 일을했다.
이런 근무사이클에 거래처가 추가되거나, 추가 납품량이 생긴다면 밤을 새게된다.
새벽 4시부터 다음날 밤 11,12시까지..
일주일에 3-4번은 밤을 새는게 기본이었고
기계가 식는 3-40분동안 의자에 누워 쪽잠을 자는게 일상이 되었다.
몸이 너무 힘들었고 고장나기시작했지만 납품량을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었다.
대충 로스팅 할 수도 없기에 신경을 최대한 쓰면서 밤을 새는 행동은 정말 내 목숨을 갉아먹는것 같았다.
이렇게 생활을 한게 거의 4개월동안이었다.
이때 몸이 정말 많이 망가졌고 지금도 회복이 되질 않는다.
모든 일이 모이는 시기가 된 3월 초는 일주일에 6일은 밤을 새며 일했다.
하루에 많이 자도 2-30분을 자며 6일을 버텨야했는데
진짜 사람이 과로사로 왜죽는지를 이해한 순간들이 몇번 있었다.
그렇게 기나긴 고통속에서 직원 또한 많이 힘들었다.
W6 로스터기를 빨리 상용화 해야하기에 매일 3-4시간씩 커피를 마시면서 테스트를 했고
남는 시간에는 거래처들 관리를 위해 돌아다녔다.
내가 워낙 힘들게 일하고 고통받았기에 직원은 내게 힘든 내색을 안보이려했지만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이때는 나 역시 직원을 보듬어줄 여유도 힘도 없었기에.
그래도 우린 힘은 못내더라도, 화이팅 할 기운은 없어도 독기를 품고 했다.
말그대로 독기다.
저승에 헬로까지 하고 온 마당에 뭔들 못하리.
졸리면 세수하고 밖에 뛰어다니고
더 맛있는 커피를 위해서
더 나은 원더월을 위해서
참고 또 참았다.
그렇게 우리는 성공적으로 W6를 상용화시키는데 성공했고
기존의 W1에서 생산하는 것 이상의 더 맛있는 쌀밥, 초밥 블렌딩을 완성해냈다.
완성된 업그레이드 쌀밥, 초밥은 거래처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성공적으로 교체까지 완료되었다.
지옥같던 시기였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도 정말 싫은걸 생각하면 몸이 으스스하고 움추려드는 느낌을 받듯이
나는 이때가 정말 너무 너무 싫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괴로웠고 출근이 너무 싫었다.
커피 볶는 것도 싫었고 내가 사람이 아니라 로봇같았다.
물론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로스터기를 다루는데서 오는 재미, 더 맛있는 커피를 위해 매일 테스트 하는 순간들.
이런 모든 것들은 재밌었고 스트레스는 없었지만
순수하게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기에
나의 원더월의 모든 순간에서 가장 싫은,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다.
W6 로스터기의 안정화상태가 된 현재는 이렇게 까지 일을 하게 되진 않는다.
저때 그렇게 고생을 하며 볶고, 밤을 새던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은 4-5시간이면 끝나버린다는 것에 직원과 허탈한 웃음을 짓곤 한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이렇게 웃으며 말 할 수있는건
이 지옥같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아무리 힘든일이 있어도
멘탈이 아주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다 해결 할 수 있는 강한 자신감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완전히 삼도천을 건너지 않았기에
이승에 잘 붙어있는채로 다음을 더 빡새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2020년 3월 14일, 원더월의 4주년이다.
'생산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더월 생산일지 25화 : 만들기 교실 (0) | 2022.05.18 |
---|---|
원더월 생산일지 24화 : 킼 (0) | 2021.09.23 |
원더월 생산일지 22화 : 마! 붓산가봤나! (0) | 2021.09.13 |
원더월 생산일지 21화 : 인정받다. (0) | 2021.09.05 |
원더월 생산일지 20화 : 출발 (0) | 2021.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