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름이다.

이름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한다면 결코 대충 짓지 않는다.

 

블루보틀, 스타벅스, 커피빈, 누구나 알만한 이름들

오늘은 대부분 모르겠지만 원더월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원더월이 아닌 커피워가 될뻔했지.

 

나는 상호를 정할 때 심각하게 고민을 하진 않았다.

엎질러진 물이 돼버린 지금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좀 더 생각을 많이 하고 지을 걸 이란 생각은 든다.

 

2화에서 이야기했듯 창업을 할 생각이 전혀 없던 터라

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중에도 상호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어떤 걸 정해야 할까 싶다가도 뭔가 팍 꽂히는 게 없다 보니 약간 초조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나온 게 Coffee WAR였는데

We Are Roasters의 앞글자를 따고 커피 업계는 전쟁터다!! 의미를 포함했다.

왜 그런생각을 했는지 과거의 나를 이해할수없지만

만들 당시에는 “와 정말 그럴싸한걸? 역시 제법이네!”라고 생각한 게 기억난다..

 

몇일 지나고나서 인쇄되 있던 커피워 상호를 보니 왠지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서

종이를 찢어버리고는 다른 걸 생각했다.

 

그 당시에는 참 멋있었던..Coffee WAR

 

다음 후보는 여심을 잡을 수 있는 귀여운걸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에

머리를 굴리다 번뜩 떠오른 게 있었다.

 

"커피를 마시면 심장이 왜 이렇게 두근두근할까, 마치 널 처음 본 그날처럼"

이 대사는 쑥스럽게도 젊은 청년 시절에 여자친구에게 했던 말이다.

꺄 제법 멋진 구석이 있구먼

굉장히 마음에 들기도 했고 특히 두근두근이 영어로 Pit a Pat 이었는데 이게 또 그렇게 깜찍할 수가 없었다.

상호를 고민하던 내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핏어팻, 바로 오케이하고 룰루랄라 하며 상표등록을 하려 했지만

이미 있었다.

 

ㅎ..

 

Pit A Pat Coffee roasters, 지금 다시 봐도 참 마음에 든다.

 

핏어팻 로스터스.. 진짜 마음에 들었는데..

사업자 등록증은 내야겠고, 서류들도 준비해야 되고, 상호명이 빨리 있어야 하는데

마음만 급해지고 머리는 안 돌아가고 참 답답했다.

 

그러다 어느 날, 밤늦게 고기집 일이 끝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고 매장에 와서

심란한 마음에 노래나 듣지 싶어 어릴 때부터 듣던 OASIS의 노래를 틀었다.

 

오아시스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노래는 꽤 즐겨듣는 편이었다.

그냥 좋아하는 몇 곡을 선택하고 재생을 누르고 커피 한 잔을 내리고는 의자에 앉았다.

 

OASIS - WONDERWALL

 

쌀쌀한 겨울 새벽 시간,

모두가 문을 닫은 어두운 길에

불 켜진 곳은 이곳뿐

따뜻한 커피 한 모금과 귀에 흘러들어오는

 

And after all You're my wonderwall.

 

오아시스의 wonderwall 은 사실 좋아하는 노래는 아니었다.

취향으론 돈룩백 같은 느낌을 좋아 한터라 원더월은 좀 심심한 느낌이 있어서 자주 듣는 건 아녔다.

그날따라 하필 그 순간에 원더월이 흘러나오고

노래를 의식 했을 때의 가사와 뭔지 모를 따뜻한 위로 감에

눈물이 흐르진 않았지만 가슴이 찌잉하고 울었다.

노래 가사에 그럴듯한 의미가 있어서도 아닌

그냥 음색이, 기타 소리가,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다.

 

그날 너무나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기에

그다음 날 쿨하게 원더월로 상호를 등록했다.

 

창업도 쿨하게, 상호도 쿨하게, 정신 나갔네

 

 

OASIS - WONDERWALL

 

원더월의 5주년이 지난 어느날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펴고 5년전으로 돌아가봤다.

 

그때 살던 옥탑방에 써있던 중2병스러운 문구

29살.

젊음을 희생하며 헌신한 곳에서 참담한 미래를 보고

번뜩 꿈에서 깨어보니 처참한 상태의 현재가 있었다.

 

열정! 을 외쳤지만 페이! 는 없었고 당연히 모은 돈도 없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어딘가 소속되기도 겁이 났다.

그래서 원더월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겁쟁이가 되어 나만의 세계로 도망친 것이다.

 

가진 것도 준비한 것도 없었지만, 그냥 시작했고

그때는 젊음과 내 커피에 대한 자신감도 넘쳤기에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창업에 필요한 돈은 한 참모 자랐고

친구에게 빌려 겨우 보증금을 내고 페인트를 사고 에스프레소 머신을 샀다.

아는 형님네 가게에 들어갈 로스터기를 임시로 빌려서 장사를 시작했다.

월세 낼 돈이, 그라인더가, 천장을 칠할 페인트 값이 없어서

온종일 고깃집에서 일을 하고 새벽에 돌아와 부족함을 채워갔다.

 

원더월 초창기 시절, 로스터기는 "다아는커피"의 기센 W1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내 이름의 가게를 연 것에 기뻐하는 척, 성공한 척했지만 현실은 시궁창보다 못했기에

이를 벗어나려 독기를 품고 1분 1초를 아껴가며 일을 했고 정말 악으로 버텨냈다.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추억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만큼.

셀프 공사를 하며 찰칵

나는 이제 커피를 시작한 지 11년이 되었고

원더월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었다.

겨우 이 정도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진 않지만, 옛날의 나는 너무 힘들었기에

커피를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내가 느꼈던 것을 말해주고 싶다.

 

나만의 커피를 하고 싶다면 그냥 시작 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다.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채워가면 되고 그 과정이 힘들어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하지만 돈 없이는 하지 말자.

 

이건 당연한 거 아닌가? 라고 되물을 수 있지만 의외로

자신의 커피 기술에 자만해서, 자신의 커피 신념이 확고해서, 자신의 커피 애정이 넘쳐나서,

등의 이유로 가장 중요한 현실을 보지 않고 시작하게 된다.

그때의 나처럼.

돈이 없다면

커피를 내리는, 볶는, 마시는 모든 순간의 행복이 단순히 돈을 위한 일이 되어 버리고

나의 삶이었던 커피가 일이 된 순간부터 내가 있는 공간마저 스트레스가 되어버린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가,

나의 20대였던 커피가

어느 순간 돈 때문에 싫어지고 미워지기에

 

커피를 시작하는 누군가의 용기를 나는 항상 응원하고 도와주겠지만

나처럼 생각 없이 시작하기보단 꼭 여유 있게 돈을 모으고 시작했으면 한다.

 

열정이 밥 먹여 주진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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